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사형(士衡). 윤성(尹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자신(尹自莘)이다. 아버지는 군수 윤유길(尹有吉)이며, 어머니는 풍산임씨(豊山任氏)로 선교랑 임선(任瑄)의 딸이다.
1642년(인조 2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53년(효종 4) 금오랑(金吾郎)을 거쳐 1657년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이 되었다. 1660년(현종 1) 공조좌랑이 되고, 그 해 함열현감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함열현에서 시행된 과거에서 고관(考官)에 대한 불만으로 응시자들이 소요를 일으키자 금란관(禁亂官)으로 주선하여 수습하였으나 대간의 탄핵을 받아 한때 파직되었다. 한때 파직되었다. 1662년 공조에 서용, 곧 호조로 옮겨졌다.
그 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병조정랑을 거쳐 사간·정언·지평이 되고, 강관(講官)으로 치도(治道)를 강론하였다. 1664년 장령으로 있다가 사임하고, 그 해 경기도사로 재직 중에 죽었다. 강직, 청렴하고 사부(辭賦)에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