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윤영구(尹榮久)의 아들로 윤영신(尹榮信)에게 입양되었다.
1885년(고종 22) 문과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에 규장각직각이 되었으며, 서장관(書狀官)에 임명되어 동지사 조병식(趙秉式)을 수행하여 청나라에 다녀왔다.
1887년 홍문관응교·시강원겸사서가 되었으며, 이어 성균관대사성·우부승지·이조참판·협판내무부사·사헌부대사헌 등을 지냈다. 1896년에는 나주부관찰사로 부임하였으며, 1902년에는 궁내부특진관·시강원첨사(侍講院詹事)가 되었다.
1903년 태의원경(太醫院卿)이 되었고, 이어 특명전권공사로서 미국에 파견되었다. 이듬해 경상북도관찰사로 부임하였으나, 재임시 도내 각 군의 민전(民錢)을 거두어들였다 하여 면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