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경선(景先). 관찰사 윤세림(尹世臨)의 후손이다.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에 가담한 공으로 6품직에 특임되었다. 1624년(인조 2)에 감찰이 되었다가 이 해 외직인 인제현감으로 나갔다.
이괄(李适)의 난 때, 이괄의 장인 이방좌(李邦佐)가 탈옥을 하여 민심을 선동하자, 이방좌를 잡아 죄를 다스렸다.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그 때 사평(司評)으로 어영대장인 원두표(元斗杓)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크게 활약하였다. 난 후 김제군수로 있다가 한때 영암으로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1646년 안익신(安益信)·유탁(柳濯) 등이 반란을 음모하고 있는 것을 알고 이산현감 유동수(柳東秀)와 함께 이를 고변하였다. 그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곧 파주목사에 제수되었으나 유동수와의 쟁공(爭功)으로 문초를 받았다.
그 뒤 파주목사로 부임하였다가 1647년에 형벌을 남발하므로 파직되었다. 1661년(현종 2)에 성주목사로 있을 때 안렴사(按廉使)의 탄핵을 받아 관작을 박탈당하고 금천으로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