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범이(凡以). 서울 출생.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독학으로 서양화가로 활동 하는 한편, 1930년부터는 신문·잡지에 미술전람회평과 시론(時論) 등을 쓰며 미술비평 분야 형성에 공헌하였다.
서양화계 진출은 1927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을 거듭하고 특선도 하며 이루어졌다. 서화협회전람회에도 참가하며, 사실적 자연주의 수법으로 꽃과 인물을 주로 소재삼은 유화활동을 하였으나, 전해지는 작품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은 1937년까지였고, 그뒤로 서양화가로서의 활약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반면, 미술평론과 한국미술사 연구에 전념하는 가운데 1940년 무렵부터는 매일신보사 학예부 기자가 되어 미술전 평을 전담하였다.
8·15광복 직후에는 새로 설립된 서울신문사 문화부장으로 재직하는 한편, 좌익 노선의 조선조형예술동맹 위원장, 이어서 좌익계 미술단체 통합조직의 조선미술동맹 위원장 및 미술평론부 위원이 되어 진보적인 민족미술 방향을 주도하다가 1947년 4월에 폐결핵으로 죽었다. 저서로 『조선미술사연구』(1946)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