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초에는 이 명칭이었으나, 995년(성종 14)부터 은청흥록대부(銀靑興祿大夫)로 바뀌고, 1076년(문종 30)에 본래 명칭으로 되면서 정3품으로 전체 29계 가운데 제4계가 되었다.
그 뒤 1275년(충렬왕 1)에 또다시 개칭되었는데, 『고려사(高麗史)』 백관지 문산계조에는 중봉대부(中奉大夫)로 바뀌었다고 기술하고 있는 데 반하여 『익재난고(益齋亂藁)』 권9 상 충선왕 세가에서는 봉익대부(奉翊大夫)로 개명하였다고 설명이 되어 있어 혼란을 빚고 있다.
그러나 이후 중봉대부는 보이지 않고 대신에 봉익대부가 중요한 관계의 하나로 기능하고 있으므로 아마 후자가 옳지 않나 생각된다. 그런데 봉익대부는 1310년(충선왕 2)의 개정 때에 종2품 상계(上階)로서 재상반열(宰相班列)의 관계가 되고 있다.
이는 은청광록대부가 비록 정3품계였지만, 당시에는 정1품계가 없는 시기여서, 실제로는 한 계단 위 내지는 그와같이 인정되고 있는 관직과 주로 어울리는 관계였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고 이해된다. 1356년(공민왕 5) 은청광록대부로 개정될 때 정2품 상계로 설정되고 있는 것 또한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