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선이라는 말은 조선 후기에 긍선(亘璇)이 저술한 『선문수경(禪門手鏡)』에서 처음 공식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긍선은 선을 깨침의 정도에 따라, 의리선(義理禪)·여래선(如來禪)·조사선(祖師禪)의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임제3구(臨濟三句) 가운데 제1구는 조사선, 제2구는 여래선, 의리선은 제3구에 해당한다.
임제 제1구는 삼요(三要)이니, 이 도리를 얻으면 부처와 조사의 스승이 되므로 조사선의 근기이다. 제2구는 삼현(三玄)이니, 이는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게 하므로 여래선의 근기이다. 제3구는 유(有)·무(無)·중(中)을 희롱하는 것이니, 이것으로는 자기 한 사람도 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즉, 긍선은 의리선을 임제 제3구에 적용시켜 자기 구제도 어려운, 근기가 낮은 이를 위한 선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한 논법에 관해 잘못을 논파하는 후학들의 비판적 저술이 나와, 약 150년에 걸쳐 논쟁을 계속하게 되었다. 즉, 대홍사 의순(意恂)의 『사변만어(四辨漫語)』를 비롯하여 홍기(洪基)의 『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과 유형(有炯)의 『선원소류(禪源溯流)』, 진하(震河)의 『선문재정록(禪門再正錄)』 등이다.
의순은 우열을 논한 긍선의 삼종선설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인명에 의한 조사선과 여래선, 법명에 의한 격외선(格外禪)과 의리선(義理禪)으로 분류하고, 언어와 논리로 표현할 수 없는 가르침이 조사선이고, 격을 갖추어서 나타낸 것이 여래선이라 하였다. 또, 예로부터 격외와 의리라는 말은 있으나 격외선과 의리선이라는 용어는 없었음을 강조하고, 이들은 조사선과 여래선을 법의 입장에서 달리 부른 것이라고 하였다.
홍기는 임제 제2구가 규모와 교격을 갖춘 언설로서 의리선이며 여래선이라고 보았다. 유형이 긍선을 지지하고 나오자, 다시 진하는 조사선과 여래선의 격외선은 활구(活句)이고 의리선은 사구(死句)라고 주장하였다.
의리선의 출현은 무념을 중시하던 조선시대에 인도의 사유선을 인정하는 듯한 뜻에서 주목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