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을 표방하는 육조(六祖) 혜능(慧能) 하의 남종계의 선, 즉 남종선(南宗禪)을 말한다. 이 조사선은 일반적으로 중국선(中國禪)을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이고 있는데, 조사(祖師)란 선종에서 불(佛)에 대신하는 이상적인 인격자이다.
조사선이라는 호칭이 정착하게 된 것은, 조사선의 계보라고 할 수 있는 『보림전(寶林傳)』(801)이 등장한 뒤의 일이다. 조사선이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이는 혜적(慧寂)으로 추정되고 있다. 혜적은 동문인 지한(智閑)에게 “자네는 다만 여래선을 얻었을 뿐, 아직 조사선을 체득하지는 못했다(汝兄得如來禪, 未得祖師禪).”(景德傳燈錄 11, 仰山慧寂)고 하였다.
종밀(宗密)은 선을 오종으로 나누어 외도선(外道禪)·범부선(凡夫禪)·소승선(小乘禪)·대승선(大乘禪)·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 如來禪)이라 하고, 이 중 여래청정선이 달마가 전한 것으로 최상선(最上禪)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후세의 선자(禪者)는 종밀의 여래선도 또한 이(理)에 매달려서 참된 선을 보인 것은 아니라 하고, 진선(眞禪)을 전한 남종선을 조사선이라고 이름하며 이를 여래선의 위에 놓은 것이다.
마조(馬祖)의 즉심시불(卽心是佛)과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는 조사선의 기본 사상이 되며, 임제(臨濟)에 이르러 조사선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이러한 조사선은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융성하였다. 신라 말 고려 초에 개산된 구산선문(九山禪門)도 거의 남돈선(南頓禪) 계통이다. 조사인 진귀(眞歸)가 석존의 스승이라는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까지 있으며, 천책(天頙)의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은 조사선사상을 크게 부각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그 뒤 선교양종 속에서 격외선(格外禪) 중심의 조사선풍이 차츰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선을 의리선(義理禪)·여래선(如來禪)·조사선(祖師禪)의 삼종선으로 구분하고 선문의 시비가 일기도 하여, 조사선이 한국의 선풍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