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병장. 속명은 곽수언(郭秀彦). 휴정(休靜)의 제자이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역모사건에 일부 승려들이 참가하면서 황해도 구월산에 있던 그에게 함께 역모를 도모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이에 응하지 않고 재령군수 박충간(朴忠侃)에게 고발하여 조정에서 이를 막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뒤 임진왜란이 일어나 스승인 휴정이 팔도(八道)의 승려들에게 의승병으로 참여할 것을 권하였을 때, 황해도에서 500명의 승병을 모집하여 왜적들과 싸웠다.
그는 전투에서뿐만 아니라 군량미를 모으는 데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선조 26년 5월의 비변사계문(備邊司啓文)에 의하면, 그가 임진왜란 때 세운 공로에 대하여 조정에서 직품(職品)을 제수하고자 하였으나, 이를 원하지 않고 선종판사(禪宗判事)가 되기를 원하니 선종판사직을 제수하게 할 것을 청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