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출가하여 율의(律儀)를 잘 지켰고, 지혜가 깊고 이해력이 뛰어났으며, 유교의 깊은 뜻도 깨달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불교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하였으나 불교의 역사를 올바로 알지 못하여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때 전제(前齊)의 정국사(定國寺)에는 도통(都統) 법상(法上)이 40년을 머물면서 200만명 이상을 지도하였다. 평원왕은 576년(평원왕 18) 의연을 정국사로 보내어 불학을 공부하고 돌아오도록 하였다.
그는 ①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든 것이 지금부터 몇 해 전이며, ② 천축에서 몇 해를 지난 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었는가, ③ 중국에 전래된 연대와 당시의 왕 및 연호가 무엇이며, ④ 제나라와 진나라 중 어느 왕이 먼저 귀의하였으며 지금까지 몇 해나 되었는가, ⑤ 『십지경론(十地經論)』·『대지도론(大智度論)』·『보살지지론(菩薩地持論)』·『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 등 논서들의 저작자 및 저술연기(著述緣起)와 그 저술이 가지는 영험 등에 관한 자세한 사항을 배워서 돌아오는 것을 임무로 부여받았다.
그는 법상의 가르침을 받아 이들에 관한 해답을 얻은 뒤 귀국하여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였다. 그가 알고자 하였던 경전들은 대승불교 문헌 중에서도 가장 철학적으로 깊이 있고, 당시 중국에서도 번역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로서 고구려의 교학수준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아울러 이 논서들은 후대의 신라 학승들이 그 철학적 전거로 삼아 빛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