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빈(子賓), 호는 병산(屛山). 이수록(李綏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경여(李敬輿)이다. 아버지는 판서 이민서(李敏敍)이며, 어머니는 원주원씨(原州元氏)로 좌의정 원두표(元斗杓)의 딸이다.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합격, 이듬해에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가 되고, 공조정랑을 거쳐 함열현감이 되었다. 1698년 알성문과에 급제, 전조(銓曹) 낭관(郎官)·사인 등을 역임하고, 이조·병조·예조 등의 참판을 거쳐 양관 대제학을 지냈다.
1721년(경종 1) 모함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하였으며, 이듬해 신임옥사 때 아우 이건명(李健命)이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서 극형을 받자, 이에 연좌되어 덕천으로 유배되었다. 1725년(영조 1) 풀려나와 우의정이 되고 이듬해 좌의정에 이르렀다.
외직에 있을 때 민은(民隱)을 잘 보살폈고, 시폐(時弊)의 시정책을 촉구하는 상소를 많이 올렸다. 또한, 묘당에서는 임금의 융숭한 예우를 받았으며, 특히 문장에 뛰어나 응제문(應製文)·반교문(頒敎文)·시책문(諡冊文) 등을 많이 남겼다. 흥덕 동산서원(東山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병산집(屛山集)』 15권 8책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