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 출신. 1919년 4월 1일 오후 8시경 홍창섭(洪昌燮)으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계획을 전하여 듣고, 외가천리에 있던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000여명의 만세시위군중과 독립만세를 외치고, 양성면 동항리로 행진하였다.
도중에 원곡면과 양성면 경계에 있는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李裕奭)을 비롯한 주동자들이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취지를 역설하고, 양성면과 원곡면내의 경찰주재소·면사무소·우편소 등을 파괴하고 일본인거주자를 축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날 밤 양성면민들로 구성된 만세시위대가 경찰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해산하여 돌아가던 길에, 원곡면에서 행진하여오던 시위대와 합세하여 다시 주재소로 쇄도하였다.
이때 선두에 서서 주재소에 투석하고 방화하였다. 이어서 양성우편소로 달려가 정문을 파괴, 소각하였다. 항쟁중 검거되어 7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