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공간적으로 끝이 없다. 그래서 태허(太虛)라 한다. 또 시간적으로 시작도 없이 영원한데 그래서 기(氣)라 한다. 이 둘은 같은 실체의 다른 이름이다.
영원의 실체인 기는 하나(一)이기에 자체 내에 분화와 운동이라는 둘(二)을 함장하고 있다. 그래서 ‘열렸다 닫히고(闔闢)’, ‘움직이고 멈추며(動靜)’, ‘산출하고 정복한다(生克)’. 이와 같은 자기 조직적·자기 분화적·자기 운동적 기의 근원을 태극(太極)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른바 이(理)란 무엇인가. 이란 다름 아닌 ‘기의 주재(氣之宰)’이다. 여기서 주재란 외부적 강제자나 초월적 명령자가 아니라, 자체 규율이고 질서를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이는 결코 기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실체일 수 없다. “이는 기에 앞설 수 없다(理不先於氣).”
서경덕은 논문의 부록에서 자신의 견해를 다시 한 번 강조해 부연하고 있다. 즉,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음양이기의 활동 뿐이며 음과 양의 교호와 변전 착종(一陰一陽)은 태일(太一), 즉 본원 기의 영묘한 작용이라는 것이다. 실재의 통일성과 생성 변화의 이원성은 역동적으로 통합된 전체를 구성할 뿐(二故化, 一故妙), 이를 넘어선 곳에 어떤 형이상의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같은 인식은 송대의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의 이기(理氣) 이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주희는 태극을 형이상(形而上)의 이로 이해하는데 비해, 서경덕은 그것을 본원적 기로 이해한다. 또한, 주희가 기와 독립된 이의 실체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는데 비해, 서경덕은 이의 실체성 자체를 부정하고 그것을 기의 한 속성 정도로 끌어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