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출신 배경과 가계 등은 알려져 있지 않다. 화원(畫員)이었으며, 아들인 광필(光弼)은 화원으로 명종의 총애를 받았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그림은 내전숭반(內殿崇班)을 지낸 이준이(李俊異)에게 배웠으며, 예종과 의종 연간의 화국(畫局)에 있으면서 궁궐내의 회사(繪事)를 주도하는 등 당대의 명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1124년(인종 2) 사신 이자덕(李資德)을 따라 북송에 가서 중국 역대 황제 중 서화가로 가장 유명했던 휘종(徽宗)으로부터 크게 인정받은 바 있다. 휘종은 그에게 당시 한림도화원(翰林圖畫院)의 대조(待詔)였던 왕가훈(王可訓)·진덕지(陳德之) 등에게 그림을 가르치게 했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그린 「예성강도(禮成江圖)」를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가 그린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는 중국의 명품으로 오인받았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그의 기량과 함께 당시 고려 화단의 발전된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현존 유작은 한 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