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능창대군파(綾昌大君派)로 이병원(李秉源)의 아들이다. 동생 이구(李球)가 은신군(恩信君) 이진(李禛)에게 입양되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아버지인 남연군(南延君)이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종친(宗親)으로서 벼슬길에 올라, 80대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1864년(고종 1) 호조 참의로 특제(特除)되고, 공조 참판으로 특별 발탁된 뒤, 1865년(고종 2)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공조 판서,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한성부 판윤을 거쳐 1870년(고종 7) 다시 공조 판서, 판종정경(判宗正卿) 등을 역임하였다.
1872년에 이도중이 사망하자 조정에서 관(棺)과 기본 부의금 외에 돈 5백냥, 포목(布木) 각 1통(同)을 보내고, 성복일(成服日)에 승지(承旨)를 보내 치제(致祭)하게 하는 등 극진한 조의를 표하였다. 1875년(고종 12) 시호(諡號)로 효헌(孝憲)을 추증(追贈)하였고, 1876년(고종 13년)에 다시 시호 숙헌(肅獻)을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