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만리(萬里), 호는 반초당(反招堂). 증조는 이충(李沖)이고, 할아버지는 이일도(李逸道)이며, 아버지는 이지형(李之馨)이다.
1649년(인조 2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검열로 등용되고, 곧 설서가 되었다.
1657년과 이듬해 두 차례에 걸쳐 실록을 태백산 · 오대산 사고에 각각 봉안하고 돌아왔다. 현종 때 정언(正言)이 되고, 이어서 지평을 거쳐 사간 · 집의를 역임하였다.
1675년 승지, 다음해 대사간이 되어 언로(言路)의 기강을 세웠고, 1676년 외직인 충청도관찰사로 나가 세곡(稅穀)의 수송을 편리하게 하는 방법을 시행하게 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게 하였다. 또한, 대동법을 시행하여 부역과 세공에 의한 백성들의 피해를 덜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