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준 ()

잠와유고
잠와유고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병조정랑, 호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창기(昌期)
잠와(潛窩), 퇴사재(退思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72년(선조 5)
사망 연도
1630년(인조 8)
본관
전의(全義: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
주요 관직
형조좌랑|병조정랑|호조참판|형조참판
관련 사건
계축옥사|인조반정|정묘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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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정랑, 호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창기(昌期), 호는 잠와(潛窩) 또는 퇴사재(退思齋). 이공달(李公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문성(李文誠)이다. 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이제신(李濟臣)이며, 어머니는 목천상씨(木川尙氏)로 상붕남(尙鵬南)의 딸이다. 이정암(李廷馣)·이항복(李恒福)·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1년(선조 34) 생원시에 합격하고, 1603년 정시문과에 장원,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으며, 예조와 병조의 좌랑을 지냈다.

160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를 다녀와 형조좌랑·병조정랑·서원현감(西原縣監)·평양서윤(平壤庶尹) 등을 역임하였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 때 영덕으로 유배되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장령에 복직되어 영남암행어사·충청도관찰사·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세자를 모시고 전주로 피난하였으며, 그 뒤 형조참판·강릉부사 등을 역임하고, 1630년 시폐(時弊)를 논하는 소를 올려 대사간이 되었다가 병조참판을 거쳐 병으로 사직하였다. 1644년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잠와유고(潛窩遺稿)』 4권이 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잠와유고(潛窩遺稿)』
『낙전당집(樂全堂集)』
『계곡집(谿谷集)』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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