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내에 설치되어 이 외에도 금보(金寶)·옥인(玉印)·옥책(玉冊)·죽책(竹冊) 등도 관리하였다.
1694년(숙종 20) 종정시(宗正寺)의 환장각(煥章閣)에 어제·어필·유교(遺敎) 등을 보관하려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하였고, 정조가 즉위하자 창덕궁의 금호문(金虎門) 안 북원(北苑)에 새로이 건물을 짓고 설치한 규장각에서 이를 관할하게 하였는데, 1781년(정조 5) 이들을 보관하는 정청(正廳)에 ‘摛文之院(이문지원)’의 4자를 어필로 써서 붙인 데에서 이같은 명칭이 나타났다.
이곳에 보관된 물품은 4년마다 한 차례씩 바람을 쐬고 볕에 말려 손상되지 않게 하였는데, 이러한 업무는 직각(直閣)이나 대교(待敎)가 맡았다.
정조는 선원전(璿源殿) 황단(皇壇)에 참배할 때마다 여기에서 머물렀는데, 전정(前庭)에는 동제측우기(銅製測雨器)가 있고, 학 한쌍을 기르기도 하였다. 소속건물로 대유재(大酋齋)·소유재(小酋齋)가 있어 모두 임금의 재실(齋室)로 사용되다가 뒤에 규장각검서관(奎章閣檢書官)의 직소(直所)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