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준지(俊之), 호는 명신당(明新堂). 할아버지는 세종이고, 아버지는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이다. 어머니는 증좌의정 신자수(申自守)의 딸이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여의었다. 세종이 이를 불쌍히 여겨 5세까지 세자와 같이 공부하도록 궁중에서 길렀으며, 8세가 되자 특별히 가덕대부(嘉德大夫)에 승서하고 영순군(永順君)에 봉하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문무에 통달하니, 세조도 세종의 유의(遺意)를 받들어 항상 좌우에 두고 모든 왕명의 출납을 일임하였다. 1466년(세조 12) 등준시(登俊試)에 5등으로 합격하였으며, 이듬해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에는 세조의 평정계획에 적극 참여한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에 책훈되고, 현록대부(顯祿大夫) 자계에 올랐다.
1468년 2월 세조가 온양에서 베푼 문과중시에 장원하여 미곡 50석을 하사받았다. 1469년(예종 1)에 일어난 남이(南怡)의 옥에 공을 세워 익대공신(翊戴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시호는 공소(恭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