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자운(子雲). 정철(鄭澈)·이항복(李恒福)·유성룡(柳成龍) 등과 함께 학문에 힘써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조헌(趙憲)·정경세(鄭經世) 등과 의병을 규합, 험준한 요지에 진을 치고 적군의 후방을 교란하여 물리쳤다.
서울이 수복된 뒤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왕명으로 상경하여 1595년 사헌부감찰에 발탁, 이듬해는 옥천군수로 나아가 부호들의 창곡(倉穀)을 풀어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도 관군과 의병을 각 요충지에 배치하여 왜군의 진격을 막은 공으로 당상관에 올랐으나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