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문원(聞遠). 이효창(李孝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수성(李守盛)이다. 아버지는 서흥부수(瑞興副守) 이춘억(李春億)이며, 어머니는 상산김씨(商山金氏)로 첨정 김국량(金國良)의 딸이다.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회령부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좌도병마절도사로 충주에서 신립(申砬)의 휘하에 들어가 싸웠으나 패하였다.
그 뒤 김명원(金命元)의 휘하에 들어가 임진강을 방어하다가 다시 패하고, 평안도병마절도사로 평양을 방어하였으나 성이 함락되자 이원익(李元翼)을 따라 순안(順安)에서 싸웠다.1593년(선조 26) 1월에 명장 이여송(李如松)이 평양을 탈환하자 군사를 이끌고 명나라 군대에 종사하였으며, 이일(李鎰)을 대신하여 순변사(巡邊使)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2월 권율(權慄)이 행주산성(幸州山城)에서 왜군을 크게 격파하고 파주산성(坡州山城)으로 옮기자, 권율과 함께 파주산성을 수비하였다.
같은 해 왜군이 진주와 구례 지방을 침략할 때 남원을 지켰다. 그러나 당시 진주성을 방어하지 못하였다는 사헌부와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대죄종군(戴罪從軍)하다가 1594년 경상도순변사에 복직되었다. 이듬해 상부와의 의견대립으로 물러났다가 임진왜란이 평정된 뒤, 포도대장에 임명되었으나 연로하다는 이유로 사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