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정이(靜而). 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 이광록(李匡祿)이며, 어머니는 권적(權適)의 딸이다. 큰아버지 이광국(李匡國)에게 입양되었다.
1603년(선조 36) 식년무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선전관(宣傳官)으로 등용되고, 1611년(광해군 3)에 훈련원습독관(訓鍊院習讀官)이 되었다. 1616년에 해주판관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임하였다. 이듬해에 진도군수로 임명되었다가 부임도 하기 전에 곡산군수로 이배(移拜)되었다.
1618년에 가산군수로 선치를 하였고, 그뒤 창주첨사(昌州僉使)를 거쳐 강계부사가 되었다. 1627년(인조 5)에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병마절도사 남이흥(南以興)의 별장(別將)이 되어 안주(安州)에서 적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뒤에 우찬성(右贊成)에 추증되었으며, 안주 충민사(忠愍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