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0년(원종 11) 6월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봉기하여 진도로 내려갈 때 전 중서사인(前中書舍人)으로 강화도에 있다가 노예들을 모아 삼별초의 후미를 구포(仇浦)까지 추격하여 5명을 베었으며, 또한 낭중(郎中) 전문윤(田文胤)과 함께 강화도의 부고(府庫)를 봉쇄하여 도적을 예방하였다.
곧 경상도안렴사(慶尙道按廉使)가 되었으며, 1271년 정월에는 밀성군(密城郡: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에서 방보(方甫)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주(金州: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로 도망하였다.
이때 반란군을 두려워하여 술승(術僧)을 불러 길흉을 점치게 하는 등 토벌을 지연시키다가 금주방어사 김훤(金晅)의 재촉으로 마지 못하여 토벌에 나서 반란군을 진압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