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화(子和), 호는 육은재(六隱齋). 이미수(李眉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윤조(李胤祖)이다. 아버지는 이춘영(李春英)이며, 어머니는 노덕원(盧德元)의 딸이다.
1629년(인조 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29년 정언을 거쳐 1635년 부수찬·검토관·수찬·부교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39년에는 정치화(鄭致和) 등과 같이 암행어사로 파견되었고, 헌납·부응교·응교·사간 등 삼사의 요직을 담당하였다.
1647년 다시 외직에 임명되어 의주부윤이 되었으나, 의주가 궁벽하여 생활하기 힘들다고 여기고 차라리 해임되어 서울로 돌아가기를 꾀하였다. 다음해 마침 큰 홍수로 압록강이 범람하여 관청의 배 수십척이 유실되자, 이것을 계기로 평안도관찰사 정치화로 하여금 자신의 파직상소를 올리게 하였다.
마침내 파직이 되었으나, 이러한 계획된 의도가 드러나 탄핵을 받고 정주에 유배되었다. 효종 때 재기용되어 승지·강화부유수·도승지 등을 지냈으나, 1652년(효종 3) 뇌물수수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덕원으로 유배되었다. 현종 즉위 후 다시 관직에 나아가 공조참판이 되었다. 이 후 호조참판·형조참판·경기도관찰사를 거쳐 한성부우윤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