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익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이 함락되어 동생 이시직이 순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의의 마음을 다진 학자.
이칭
성흠(聖欽)
죽재(竹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7년(명종 22)
사망 연도
1642년(인조 20)
본관
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관련 사건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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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이 함락되어 동생 이시직이 순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의의 마음을 다진 학자.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흠(聖欽), 호는 죽재(竹齋). 아버지는 찰방 이빈(李賓)이고, 이귀(李貴)의 종질이며, 이석형(李石亨)의 6세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천성이 지효(至孝)하고 총민하여 어려서부터 글배우기를 좋아하였다. 15∼16세에 경전제가(經傳諸家)에 박통할 정도였으나,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은 채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김장생(金長生)을 종유하면서 더욱 학문이 정미해졌고 동생인 이시직(李時稷)과의 우애가 돈독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서울과 강도(江都)가 함락되고 남한산성이 위급하다는 소식이 들리자 통곡하며 자결하려 한 바 있다.

장령을 지냈던 동생 이시직이 이미 강화에서 순절한 소식을 듣고 “임금을 욕되게 하는 신하는 마땅히 죽어야 되는데 동생이 사소(死所)를 얻었구나.” 하고 애통해하면서도 충의의 마음이 결연하였다. 뒤에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이 이시익의 행의(行誼)를 칭송한 바 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황고집(黃皐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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