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흠(聖欽), 호는 죽재(竹齋). 아버지는 찰방 이빈(李賓)이고, 이귀(李貴)의 종질이며, 이석형(李石亨)의 6세손이다.
천성이 지효(至孝)하고 총민하여 어려서부터 글배우기를 좋아하였다. 15∼16세에 경전제가(經傳諸家)에 박통할 정도였으나,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은 채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김장생(金長生)을 종유하면서 더욱 학문이 정미해졌고 동생인 이시직(李時稷)과의 우애가 돈독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서울과 강도(江都)가 함락되고 남한산성이 위급하다는 소식이 들리자 통곡하며 자결하려 한 바 있다.
장령을 지냈던 동생 이시직이 이미 강화에서 순절한 소식을 듣고 “임금을 욕되게 하는 신하는 마땅히 죽어야 되는데 동생이 사소(死所)를 얻었구나.” 하고 애통해하면서도 충의의 마음이 결연하였다. 뒤에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이 이시익의 행의(行誼)를 칭송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