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사영(士榮).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의 후손이며, 참판 이몽양(李夢亮)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부사 이성남(李星男)이며, 어머니는 참판 김제남(金悌男)의 딸이다.
1659년(효종 10) 병조판서 송준길(宋浚吉)의 천거로 사옹원봉사가 된 뒤 직장(直長)이 되고, 이어서 사복시주부·홍산현감을 거쳐 1671년(현종 12) 개령현감이 되었다. 때마침 기근이 들었으나 비축미가 없었으므로 경비를 절약하여 기민을 구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 사실이 암행어사 신정(申晸)에 의하여 보고되어 이듬해 성주목사가 되었다. 이곳에서도 진휼정책을 잘하여 통정대부에 오르고, 이어서 공주목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