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신(子信). 종실 강성정(江城正) 이견손(李堅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효언(李孝彦)이다. 아버지는 이경율(李景慄)이며, 어머니는 홍인우(洪仁佑)의 딸이다.
1593년(선조 2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세자시강원설서가 되고 이어서 사예를 역임하였다. 1595년 세자시강원문학, 이듬해 홍문관의 부교리·교리, 1597년 직강·정언이 되었다. 이듬해 교리·문학 등 오랜기간 시독관(侍讀官)으로 고전을 진강(進講)하고 1601년 임천군수(林川郡守)가 되었다.
1603년 장령·교리, 세자시강원보덕, 이듬해 사인·집의·전적 등을 역임하고, 1606년 사인으로 춘추관지제교(春秋館知製敎)를 겸하여 『선조실록』의 중인(重印)에 참여하였다. 이어서 상의원정, 보덕·필선(弼善)을 역임하고 1607년(선조 40) 선천군수(宣川郡守)로 외직에 나갔다.
1612년(광해군 4) 다시 사인으로 들어왔다가 1615년 여주목사(驪州牧使)로 나갔다. 1624년(인조 2)에 장례원판결사가 되었는데 이 때 아들 이진영(李晋英)은 공조정랑, 손자 이계(李烓)는 사정(司正)으로 3대가 관직에 종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