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할아버지는 환조(桓祖) 이자춘(李子春)이고, 아버지는 태조의 백형(伯兄)인 이원계(李元桂)이며,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 이천우(李天祐)의 형이다.
1398년(태조 7)에 아우 이천우와 함께 세자 이방석(李芳碩)의 보필을 맡고 있던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이 난을 꾸민다는 정보에 따라, 이방원(李芳遠)·이방간(李芳幹)을 도와 그들을 평정한 공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녹훈되고 영안군(寧安君)에 봉하여졌다.
1400년(정종 2) 이방간의 난 때 중립적인 처신을 하였으며, 그 뒤에도 병을 핑계삼아 조정에 잘 나가지 않아 태종의 미움을 받아 양주에 안치되었다가 풀려났다. 그런데 이양우가 병을 핑계삼아 조정에 나가지 않은 것은 당시 왕실 족보가 객관적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개작(改作)하는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고 한다.
1408년(태종 8)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요동에서 왜적들에게 잡혀갔던 백성들을 구하여 왔다. 1412년 5월에 태조의 직계가 아니면서 재내제군(在內諸君)의 호를 받은 자를 혁파할 때 공신인 까닭에 완원부원군(完原府院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그 뒤 1414년에 전주에 유배중인 이방간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일이 탄로나서 이방간과의 사통죄(私通罪)로 다시 대간(臺諫)의 격렬한 탄핵을 받았으나, 오히려 대간이 외방에 부처(付處)되는 소동을 벌였다. 시호는 안소(安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