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현보(顯父). 1514년(중종 9) 무과에 급제하여 절도사를 거쳐 참판에 이르렀다. 정평부사 재직시 추호도 백성을 괴롭힌 일이 없어 감사가 포장(褒奬)하고 통정대부로 가자(加資)하게 하였다. 또한, 북병사가 되어 백성을 위무하고 야인을 회유하여 변방을 편안하게 하였다. 다시 병조참판과 제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청렴결백하고 수령 재직시는 선정을 베풀었다. 제주도에서는 도민이 이영을 기려 그림을 그려서 참배하였는데, 그 당을 괘편당(掛鞭堂)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