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여함(汝涵). 영의정 이시백(李時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이흔(李欣)이다. 아버지는 이상윤(李相胤)이며, 어머니는 예조참판 허계(許啓)의 딸이다. 큰아버지 이상주(李相胄)에게 입양되었다.
1674년(현종 15) 음서로 후릉참봉(厚陵參奉)이 되고, 곧이어 예빈시봉사(禮賓寺奉事)를 거쳐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을 역임하였다. 1680년(숙종 6)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에 올랐다. 통례원인의에 제수된 지 1년도 안 되어 증조모 황부인(黃夫人)이 종숙의 임소인 배천에 머무르자, 배천에 가까운 신계현령(新溪縣令)을 자원하여 내려가 모셨다.
그 뒤 1687년 사재감주부(司宰監主簿)가 되고, 이어 창평현령이 되어 치민에 진력하여 그 지방 백성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천품이 관인돈소(寬仁敦素)하고 겉치레를 싫어하였으며, 효성도 지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