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민합작의 특권회사로 주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운반하였으며 민간화물 운송도 담당하였다.
이 회사는 전운국에서 인수한 400톤급 선박인 창룡호(蒼龍號)·현익호(顯益號)와 독일로부터 구입한 1,000톤급 선박 이운호를 중심으로 일본과 중국에서 구입한 30∼100톤급 선박 5척을 가지고 있었다.
청일전쟁으로 이운사 소속 선박이 일본군에 징발당하여 일본군 군수물자를 수송하였고, 청일전쟁 이후에는 일본우선주식회사(日本郵船株式會社)가 이운사 선박을 위탁운항함으로써 업무를 중단해야 하였다.
1896년 일본세력이 약화되어 일본우선주식회사로부터 선박을 돌려받기는 하였지만 갑오경장 때 실시된 조세의 금납화로 세곡 운송이 줄어들어 재기하지 못하였다. 이후 소속선박을 세창양행 등에 위탁경영하게 되었고, 그간 이운사가 독점하다시피 하였던 해운업은 민간기업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운사는 근대적 해운업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정부직영(1886년 이후)에서 관민합작(1892년 말∼1900년), 민간기업(1900년대 초 이후) 등의 단계로 발전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세곡운반의 특권이 농민층의 부담을 가중시켜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는 하나의 이유를 제공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