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字)는 성여(盛汝) 호(號)는 성재(盛齋), 고조부는 대사간 이혜(李嵇) 증조부는 광주목사 이희담(李喜聃), 부친은 증 이조참판 이병빈(李秉彬). 1881년(고종 18) 홍문관부교리가 되었고, 1884년에는 정주목사를 지냈다. 1886년 참의내무부사(參議內務府事)를 역임하였고, 1888년 감리원산항통상사무(監理元山港通商事務)를 지냈다. 1890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1891년 사헌부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892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동지정사 조병직(趙秉稷)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1894년 예방승지·경모궁제거 겸 영희전제거(景慕宮提擧兼永禧殿提擧)에 임명되었다. 1895년 강릉부관찰사에 임명되어 재임하던 중, 1986년 초 민용호(閔龍鎬)의진이 강릉에 입성하자, 강제 추출당하고 말았다. 을미개혁으로 지방관제가 개혁될 때 강원부관찰사에 임명되었다. 1910년 가의(嘉義)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