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고종 24) 유학으로서 곧바로 전시(殿試)에 나아가 급제한 뒤 사악(賜樂)하였다. 이 해에 규장각대교를 지낸 뒤 이듬해에는 주천(注薦)에 들고 시강원설서가 되었다. 1889년 시강원 겸 문학이 되었고, 1890년 이조정랑·시강원설서 겸 필선·부사과·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1893년 이조참의에 올랐으며, 을미사변이 일어난 1895년 왕태자궁대부(王太子宮大夫)가 되었고, 신사유람단의 일행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1897년 사직서제조(社稷署提調)·왕태자궁시강원첨사(王太子宮侍講院詹事)·궁내부특진관을 지냈다. 1898년 장례원소경(掌禮院少卿)이 되었고, 1899년 황해도관찰사와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