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군칙(君則), 호는 수남(水南). 이해창(李海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만익(李晩益)이다. 아버지는 설서(說書) 이필중(李必重)이며, 어머니는 윤반(尹攀)의 딸이다.
1724년(경종 4) 사마시에 합격하고, 1735년(영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9년 전라도암행어사를 거쳐 그 해에 부교리가 되었다. 1748년 동지 겸 사은사(冬至兼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인 1749년 부승지에 오르고, 그 뒤 외직인 장단부사와 동래부사를 역임한 뒤 1762년 도승지가 되었다.
그 해 5월 영조가 세자를 휘령전(徽寧殿)에 불러, 죽은 정성왕후(貞聖王后: 영조의 비)와 영빈(暎嬪: 세자의 생모)의 계시가 있다 하여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려 하자, 한낱 여인의 계시를 믿고 세자를 죽이려 하느냐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이를 막으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