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형여(泂如), 호는 간옹(艮翁)·옥포(玉浦). 이자침(李自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난(李鸞)이다. 아버지는 판관 이유일(李惟一)이며, 어머니는 참봉 민덕룡(閔德龍)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 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곧 검열에 등용되고, 1615년 전적에 승직되었다. 그 뒤 사서·정언·헌납·지평·장령·예조정랑·병조정랑을 거쳐 직강을 역임하였다. 1618년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는 논의가 일어나자, 이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심한 문초를 받았으나 끝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다행히 기자헌(奇自獻)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고 제주에 안치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다시 사예와 장령 등에 임용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미처 왕을 호종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전한(典翰)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