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1978. 평안북도 용천에서 장로교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음악과 없는 음악부에서 음악을 연구하며 연희전문음악대의 일원으로 봄·가을로 2회씩 전국을 순연하였다.
졸업 후 일본고등음악학교에 입학, 기노시다(木下保)를 사사하였고, 1939년 10월에 열린 전 일본 성악콩쿨대회에서 1등 없는 수석으로 당선되어 한국성악의 기염을 토하였다. 1941년 졸업 후 동경에서 독창회를 가졌고, 1943년 5월에 귀국독창회를 서울 부민관(府民館)에서 열었다.
광복 후 한국 오페라계에 투신, 현제명(玄濟明) 작곡의 「춘향전」을 비롯하여, 푸치니의 「토스카」,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비제의 「카르멘」, 베르디의 「오셀로」 등에 주역으로 출연하였다.
한국오페라단 단장을 역임하였으며, 1953년 불의의 화상을 크게 입어 실의에 찬 생활을 계속하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등을 거쳐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학장까지 지냈다.
1956년 5월 8일 명동 국립극장에서 재기독창회(반주 부인 李貞子)를 성공리에 마쳤고, 2년 후인 1958년 10월 15일 또다시 독창회를 열어 건재함을 과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