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강서 출생. 본명은 진식(鎭湜). 평양중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후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경복중학교를 다시 졸업하였다. 1957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불문과를 중퇴하였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에 ‘문리문학회’를 창립하여 회장을 맡고 『문리문학』지를 창간했다. 『문학예술』지의 정식 추천을 받아 시단에 데뷔하기도 하였다.
1957년부터 1965년까지 프랑스에 체재하며 파리국립대학교 고고학 · 미술사 연구원을 수료했다. 프랑스의 미술 평론가 미셀 라공(Michel Ragon)의 『추상예술의 모험』을 번역한 1964년을 시작으로 미술 평론 활동을 했다. 1966년 홍익대학교 교수로 임용되면서부터 본격적인 활동과 더불어 한국 현대 미술의 국제적 감각을 드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1970년대의 한국 실험 미술의 이론적인 지주가 되어 이른바 한국 특유의 미니멀리즘(minimalism: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으로서의 단색주의 내지 백색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공헌했다.
화단의 양대 파벌로서의 서울대파와 홍익대파를 뛰어넘어 실험적인 모색의 길을 찾는 젊은 작가들에게 보다 넓은 시야를 제공했지만 한국 현대 미술 본래의 수용 미술로서의 한계라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스스로도 중요시했던 「환원과 확산」이라는 테마는 바로 이 시대의 양상을 잘 말해 주는 것이다. 주로 현대 미술에 있어서의 포멀리즘(formalism: 형식주의)적인 시각을 통해 상황과 그 변천 과정을 진단해 나갔던 테마이었다.
그는 특히 평면 회화가 갖는 감수성을 중심으로 추상 회화의 세계를 누구보다 심도 깊이 이해하고 연구해 나갔다. 하지만 1970년대 말의 개념주의적 성향과 그 철학적 사변성에는 체질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1986년부터 1992년까지 한국미술평론가협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미술 평단의 기본적인 역할을 확대, 활성화시키려 노력했다. 특히 계간으로 발행된 『미술평단』의 창간은 우리 미술 평단에 큰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다. 시적인 감성과 예리한 시각성 그리고 체질적인 낭만성은 미술 평론의 이미지를 그만큼 높였다. 하지만 이러한 개성이 한국 화단의 집단적인 성향과는 엇갈리기도 하였다.
주요 저서로서는 『현대미술의 궤적』(1974), 『한국미술, 그 오늘의 얼굴』(1982), 『현대미술에서의 환원과 확산』(1991), 『서양미술의 계보』(1992) 등이 있다. 역서로서는 미셀 라공의 『새로운 예술의 인생』(1974), 루이 우르디크의 『세계회화의 역사』(1974), H.W.잰슨의 『서양미술사』(1985) 등이 있다. 프랑스 문화성으로부터 문화예술훈장을 받았으며 각종 국제미술전의 심사 위원과 커미셔너 등도 맡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