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

이재준
이재준
경제
인물
해방 이후 대림산업주식회사, 대림엔지니어링주식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
이칭
수암(修巖)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7년
사망 연도
1995년
본관
전주(全州)
출생지
경기도 시흥
정의
해방 이후 대림산업주식회사, 대림엔지니어링주식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수암(修巖). 경기도 시흥 출신. 아버지는 이규응(李奎應)이며 어머니는 양남옥(梁南玉)이다. 선조의 왕자인 인성대군의 10대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군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상급학교에 진학하려 했으나 일본인 밑에서는 공부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만류로 정미소에서 일을 배웠다.

1939년 대림산업(大林産業)의 전신인 부림상회를 설립, 일제의 질곡(桎梏)된 경제체제에서도 목재업으로 사업에 성공하였다.

1945년 광복 후 회사명을 대림산업주식회사로 변경하고 건설업을 시작하였다. 건국 초부터 도로·항만·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의 건설과 특히 비료·정유·석유화학·제철 등 국가기간산업 건설에 참여해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했다.

6·25전쟁 후 종합건설업체로 면모를 갖추어 국내 제1위의 건설회사로 부상하였다. 1954년 서울증권주식회사, 1965년 대림콘크리트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본사를 부평에서 서울로 이전하였다.

1966년 베트남에 리치항만항타공사를 수주하여 국내업체로는 처음으로 해외건설시장으로 진출하는 토대를 구축하였다. 그 뒤 브루나이·태국·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지역과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이란 등 중동지역에 진출하여 대규모 공사의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1968년 대림요업주식회사, 1969년 대림흥산주식회사, 1970년 대림통산주식회사를 창설, 대기업집단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1974년 대림엔지니어링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턴키베이스방식의 대규모해외공사 수주에 대비하는 한편, 1977년 이후에는 해외진출하여 오만·동경·뉴욕·바레인·런던·이집트·쿠웨이트·이라크·나이지리아 등에 지점망을 구축하였다.

1977년 대림자동차공업주식회사의 전신인 대림공업주식회사, 1979년 호남에틸렌주식회사를 인수하여 기계공업 분야와 중화학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86년 삼호주식회사와 그 계열사를, 1988년 고려개발주식회사를 인수하여 사세를 확충했다.

1994년 종합무역회사인 대림코퍼레이션, 1995년 정보시대를 이끌 대림정보통신주식회사를 신설, 건설업을 모태로 한 요업·콘크리트·기계·석유화학 등 제조업과 증권·엔지니어링·관광·무역·정보산업 등을 포괄한 대림그룹을 창출하였다.

1970년 대림학원을 설립하여 안양여자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1977년 대림전문대학, 1989년 수암장학문화재단을 설립했다.

1980년부터는 대한건설협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서울올림픽추진위원회 이사, 건설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6년에는 금탑산업훈장, 1981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대림산업 편, 『대림60년사』(1999)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박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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