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이며, 어머니는 중추원부사 정세호(鄭世虎)의 딸이다. 선조의 형이다. 왕실 지친(至親)의 신분으로 하원군(河原君)에 봉하여졌다.
초창기는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한편 안하무인격으로 주변에 횡포를 부렸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맞자 1593년에는 종실자손 중에서도 유능한 자는 문무 양과에 응시하도록 하자고 주장하였다.
한편, 1596년에는 소를 올려 “왕은 위로는 조종(祖宗)의 위대한 치적을 항상 생각하고 아래로는 신민(臣民)들의 피나는 정성을 존중하면서 다수의 의견을 좇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국토를 유린한 왜군과 투쟁하기 위하여 분의복수군(奮義復讐軍)에 가담하여 적극 활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왜군의 축출을 보지 못하고 이 해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