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심수(心水). 화원으로 사과를 지낸 명수(明修)의 아들이다. 그 역시 화원으로 사과를 지냈으며, 수형(壽亨)-홍규(泓虬)-기룡(起龍)으로 이어지는 화원집안을 형성하였다.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인 윤두서(尹斗緖)는 “그가 안견(安堅)을 따라서 필법이 정교하여 이불해(李不害)의 선구로 삼을만하다.”고 평한 바 있다. 유작으로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미법산수도(米法山水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가 전한다.
「설경산수도」는 조선 초기 안견화풍의 형식화된 특징을 보이고 있는 데 반해, 「미법산수도」는 남종화풍(南宗畫風)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어 우리나라 남종화의 수용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