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홍성 출신. 조선신학교(朝鮮神學校)의 창립요원 중 한 사람이다. 1911년 보성전문학교 법률과를 졸업하였고, 1922년 일본 동경신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전도사로 목회활동을 시작하면서 1923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1928년 피어선성경학원 원감이 되었다. 신사참배 문제로 평양신학교가 무기 휴교 상태가 되고 선교사도 물러가게 되자 선교사의 통제와 간섭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손으로 운영되는 신학교 설립이 추진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자유주의적 신학의 조선신학교가 1940년 정식 개교할 때 김대현(金大鉉)·김재준(金在俊) 등과 함께 교수로 취임하였다.
양평 하교교회에서 시무하다가 1940년 왕십리교회로 옮겼으며 1949년 장로회신학교 이사장을 지냈다. 세브란스병원 원목(院牧), 경성노회 노회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