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부평(富平). 자는 중협(仲協), 호는 죽호(竹湖). 이덕순(李德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이재(李以載)이고, 아버지는 좌승지 이세유(李世維)이다.
1699년(숙종 25)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소론으로서 정언·지평·사간 등을 거치면서 이유(李濡)·김창집(金昌集) 등 노론계열의 중신을 탄핵하다가 파직되기도 하였다.
1721년(경종 1) 충주목사를 거쳐 1723년 노론축출에 가담하였다가 1725년(영조 1) 노론의 집권으로 삭직되었다. 1728년 경기도관찰사에 임명되어 대사헌·형조판서·호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약관의 나이로 경사(經史)에 통하였으며 40여년을 관직에 있으면서 오직 청렴함과 강직함으로써 왕을 보필하였다.
김일경(金一鏡)이 득세하자 그에게 많은 사대부가 아부하였으나 이를 경계하였다. 술을 좋아하고 풍류를 즐겼으나 호조판서 재직 때에 비용을 절약하여 국고를 충실하게 하는 행정적 수완을 보이기도 하였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