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주지(胄之), 호는 망헌(忘軒). 좌의정 이원(李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이증(李增)이고, 아버지는 현감 이평(李泙)이며, 어머니는 허추(許樞)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8년(성종 19)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전임사관인 예문관검열과 사간원정언을 역임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인으로 몰려 진도로 귀양갔다가,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앞서 궐내에 대간청을 설치할 것을 청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김굉필(金宏弼) 등과 함께 사형에 처해졌다.
성품이 어질며 글을 잘 지었고, 시에는 성당의 품격이 있었으며, 정언으로 있을 때에는 직언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주로 삼사(三司)에서 활약하였다.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원(忠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