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노천(老泉), 호는 취촌(醉村). 이완눌(李完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합(李柙)이고, 아버지는 한성판윤 이광하(李光夏)이며, 어머니는 영의정 심지원(沈之源)의 딸이다.
1684년(숙종 10)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1697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705년 겸문학으로 김재(金栽)를 논척하였다. 1707년 다시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 1710년 승지를 거쳐 대사간이 되어 최석정(崔錫鼎)을 신구(伸救: 도와 구제함)하다가 전직되었다.
경종 때 예조참판·황해도관찰사 등을 지내고, 영조초 예조판서·이조판서 등을 거쳐, 1729년(영조 5) 우의정이 되어 실록청총재관으로 『경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글씨에 뛰어났으며, 작품으로는 「백세청풍비(百世淸風碑)」·「청성묘비(淸聖廟碑)」등의 글씨가 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