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중모(仲模), 호는 경암(敬菴). 이동표(李東標)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이진굉(李鎭紘)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큰할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웠으나 성장하면서 과거시험에는 별로 뜻이 없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강요로 마지못해 과장을 상당기간 동안 출입하였으나 끝내 급제하지 못하자, 벼슬하기를 그만두고 더욱 학문연구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아울러 서예와 시문에도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만년에 이르러서는 주로 제자양성에 주력하였는데, 1849년(헌종 15)에는 추천으로 가감역에 올랐다. 1857년(철종 8)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자되어 첨지중추부사가 되었으며, 1860년에는 돈녕부도정이 되었다. 저서로는 『경암집(敬菴集)』1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