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군관이었으나 1629년(인조 7) 청나라에 국서를 가지고 갈 인물로 발탁됨으로써 역관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인조는 처음에 그가 비록 영리하지만 재물에 약하여 국가를 욕되게 할 인물이라고 선택을 주저하였으나, 역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자 1641년에는 통정대부에까지 승급시켜주었다.
그 뒤 상급역관인 정명수(鄭命壽)가 청나라의 세력을 믿고 조선에서의 권세를 임의로 하여 조정의 물의를 빚자, 수하인 그도 점차 원성을 사게 되었다. 1651년 신면(申冕)의 역모사건이 청을 배후로 하였다는 고변이 있자, 그 중재인으로 지목되어 참형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