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고종 8)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이 되었고, 1873년에는 사은 겸 동지정사(謝恩兼冬至正使) 정건조(鄭健朝)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74년 헌납과 집의를 역임하였다. 1877년 성균관대사성이 되었고, 1878년에는 참의를 지냈다.
1880년 예방승지를 지냈고, 갑신정변이 일어나던 1884년에는 이조참판이 되었다. 1885년 사헌부대사헌이 되었으며, 1886년에는 충주목사를 지냈다. 1891년 한성부판윤과 형조판서에 임명되었고,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92년 사헌부대사헌과 의정부좌참찬·홍문관제학을 역임하였다.
1896년 산릉제거(山陵提擧)에 임명되었고, 이듬해에는 산릉도감제조·사직서제조(社稷署提調)·궁내부특진관·임모궁제조(任慕宮提調)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897년 중추원일등의관·태의원경(太醫院卿)·한성부판윤을 역임하였다.
백성의 항명을 효유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중견책을 당하였으며, 장례원경(掌禮院卿)·시종원경(侍從院卿)을 지내기도 하였다. 1903년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영희전제조(永禧殿提調)·사직서제조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