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계장(季長), 호는 개석헌(介石軒). 이원명(李元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대순(李大純)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준림(李俊林)이며, 어머니는 유핵(庾翮)의 딸이다.
1735년(영조 11) 진사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1738년 청암도찰방(靑巖道察訪)이 되었으나 그 뒤 곧 사임, 김재로(金在魯)의 추천으로 전적이 되고, 예조와 병조의 낭관을 거쳐 전의현감, 경상우도와 충청도의 도사를 지냈다.
1746년 장령으로 있으면서 전라병사 이경철(李景喆)을 비롯한 지방관원들의 잘못을 논책하여 처벌하도록 하였으며, 그뒤 영광군수를 지내고 사퇴하였다. 1751년 헌납으로 복직되고 군자감정을 거쳐, 1759년 다시 헌납이 되었다.
1761년 사간으로 있을 때 비행을 자행하는 전라도관찰사 홍인한(洪麟漢)을 탄핵하려다가 상소내용이 사전에 누설되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다.
그 뒤 다시 벼슬길에 올라 1771년 사간으로 재직하면서 황해도감사 홍양한(洪良漢)과 병사 이한창(李漢昌)의 잘못을 탄핵하여 처벌하도록 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전 군수 윤광소(尹光紹)가 재직중 농사 때 농민들을 토목공사에 동원하고 권세가에게 뇌물을 바치는 비행을 자행하는 한편, 할머니를 유기하는 불효를 저질렀음을 들어 이를 탄핵하였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여 홍국영(洪國榮)의 세도정권이 수립되자 이를 통탄하고 함평에 은거하였다. 1785년 노인직으로 지중추부사가 된 뒤, 다시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승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