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의 제2차 봉기 때 북접계의 접주(接主)로 활동하였다. 동학농민군은 1894년(고종 31) 7월 일본군이 서울을 침범하여 친일정권을 세우려 한다는 소식을 듣자 남접계는 전봉준(全琫準)을 총대장으로 하여 전라도 전역에서 기포(起包)하였다.
1차 봉기 때 종교적 입장을 고수하여 기포하지 않았던 최시형(崔時亨) 지도하의 북접계는 항일민족투쟁이라는 9월의 제2차 봉기의 명분 앞에 남접과의 대립을 해소하고 공동투쟁을 위하여 봉기하였다. 이화경은 북접계의 인물로서, 제2차 봉기 때 원주지방의 접주로서 임순화(林淳化)와 함께 기포하였다.
이 때 청산(靑山)에 집결한 북접군과 합류하여 보은 장내리를 거쳐 11월 중순 논산에서 남접군과 함께 일본군과 관군을 상대로 한 전투에 가담하였다. 그 뒤 일본군 및 관군을 맞아 가장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우금치전투에서 패퇴하여 퇴각도중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