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영환(永煥), 영신(永信)으로 개명. 자는 화삼(花三). 전라남도 장성 출신. 통정대부 이지백(李智白)의 아들이다.
을미사변으로 유림들이 거의하던 1896년 장성에서 거의한 기우만(奇宇萬)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장성·광주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고종의 선유조치로 향리로 돌아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종숙 이사유(李司維)와 함께 향리인 장성군 삼계면의 150여 장정들을 규합,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삼북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일본군을 여러 차례 공격하였다. 1906년 봄 의병장 이대극(李大克)이 영광에서 기병하여 기삼연(奇參衍)의병부대에 합류하여, 법성포·무장·장성 등지에서 전투를 벌일 때 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기삼연부대가 패배하고 의병들이 흩어지자, 다음해인 1908년 3월 이대극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부대를 재편성할 때 후군장에 임명되었다. 이 후 계속하여 무장·장성·영광·고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909년 4월 이대극이 전사하자 부대를 수습하여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1910년 1월 본진에 합류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