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유야(悠也), 호는 백치(白痴). 이신충(李藎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계인(李啓仁)이고, 아버지는 대사간 이사경(李士慶)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군수 성희익(成希益)의 딸이다.
음보로 용강현령이 되고, 1618년(광해군 10)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장령이 되어 시관(試官) 김륜(金崙)과 임건(林楗) 등의 잘못을 탄핵하였다. 이어서 호조정랑·직강·사서를 거쳐 평양서윤이 되었다.
1624년(인조 2) 군기시첨정으로 있을 때에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이 북쪽 오랑캐인 번호(藩胡)를 친다는 구실로 군사를 거느리고 함경도에 들어오자, 접반사가 되어 임기응변으로 명나라 군사가 남하하는 것을 저지하였다.
그 뒤 남원부사·대동찰방·인주부사·평해군수·능주목사(綾州牧使)를 거쳐, 1632년 내섬시정(內贍寺正)이 되고 이어서 제용감정(濟用監正)을 역임한 뒤 예빈시정(禮賓寺正)이 되었다. 곧이어 통례원상례(通禮院相禮)가 되었고 울산부사로 나갔다가 사감이 있는 어사(御史)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9년 뒤에 해주목사로 복직되었으나 어머니의 상으로 사임하였다. 다시 종묘영(宗廟令)·상례(相禮)·안동부사·병조참의·영흥부사를 역임하였다.